첫번째 계명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으나, 전통별로 계명을 분할하는, 번호 매기는 방식이 다릅니다. 로마 가톨릭과 루터교는 ‘우상 금지’를 첫 계명 안에 포함시키는 대신, 마지막 ‘탐내지 말라’를 둘로 나누고, 동방 정교회와 개신교는 ‘우상 금지’를 독립된 둘째 계명으로 분리합니다. 여기서 대다수 개신교 전통의 순서를 따르도록 합니다.
“나는 너희를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출 20:2-3)
계명의 위치: 구원 사건에 종속된 언약
개신교 전통에서 첫 번째 계명은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출 20:3)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앞선 선언—“나는 너희를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희의 하나님”(출 20:2)—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구원활동과 연결된 새로운 관계 요청입니다. 이는 배타적 유일신에 대한 강요가 아니라, 구원활동을 세상에 펼치는 '자기 드러냄(계시)'에 참여하라는 초청이며 하나님의 방향성과 하나의 호흡이 되어 그 해방의 여정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부탁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특정 민족 혹은 특정 종교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냅니다. 종살이라는 백성의 현존과 그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찾아 내려오신 하나님의 활동이 역사 안에 드러날 때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이 시작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사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신명기 7장 7-8절)"
언약: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으로의 초대
십계명 본문에 대하여 다수의 학자들은 고대 근동의 군주 계약 양식(Suzerain-Vassal Treaty)을 떠올려 맥락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영주들이 군주 앞에 충성 맹세를 할 때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왕을 섬기지 말라”는 서약과 십계명의 서약이 유사하다는 주장입니다. 그 주장을 따르면 계명은 군주인 야웨 하나님의 지배 질서와 가치 체계에 대한 충성 맹세입니다. 하지만 이 해석이 계명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나, 하나님을 단순히 고대 근동의 다른 신들과 동일한 방식의 군주로만 이해할 때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십계명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야웨 신앙의 독특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고대 근동의 신들이 영토와 혈통에 기반했다면, 야웨는 오경의 약자 보호로 대표되는 공동체 질서와 가치 체계, 그리고 그것이 요청하는 삶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또 오랜 기간 실천적으로도 십계명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었으나 많은 경우 법률 조항이나 교리처럼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언약입니다. 언약은 ‘나와 너’ 라는 관계 속에서 성립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참여하라는 초대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을 규범의 목록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 안에서 가치와 삶의 방향, 그리고 부름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 활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야웨는 배타적 충성을 요청하기보다 구원 활동이 역사 안에 드러낸 호흡(숨결)의 방향성에 참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킨다”(요 14:15)고 합니다. 여기서 계명은 처벌 규칙이 아니라 사랑 관계의 언어화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추구, 그 숨결을 사랑하기에 그 호흡에 함께 참여하려는 대체불가능한 자신의 자리에서의 실천이 뒤따릅니다. 그 걸음 안에서 하나님은 도움과 지혜가 되고 우리의 이해가 확장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언약 관계에 참여하는 과정이며, 그 관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을 지납니다.
초청: 하나님과 함께 숨쉬는 해방된 백성들
성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호흡으로 빚어진 존재로 증언합니다. 이 관점에서 첫 계명은 하나됨: 하나의 호흡으로 회복하라는 야웨의 초청입니다. 구약 신앙의 '하나의 야웨, 하나의 성전'은 유일신 숭배와 단일한 예배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내 백성, 야웨는 너희 하나님"은 배타적 특권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이 일치된 호흡으로 살아가라는 초청입니다. 계명은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백성에게 연결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야웨는 특정 종교의 의식이나 정체성이 아니라 삶의 행동이 드러내는 방향성으로 계시됩니다. 야웨의 이름 (나는 나다 'I am that I am')의 기원에 관한 다양한 해석 안에서 중요한 주장들이 있습니다: 1) 대다수의 학자들은 존재하다 '하야' 동사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합니다; 2) 일부의 학자들은 '폭풍우와 같이 역동하여 움직이다'를 의미하는 '하와' 동사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합니다; 3) 어떤 해석에서는 인간의 호흡소리, 숨결 (들이쉬고 내쉬고) 소리에서 유래하였다고 하기도 합니다; 존재 혹은 활동을 의미하는 미완료 동사로서 하나님의 이름은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하는 시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름 자체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서 '움직이시는 하나님,' '제한할 수 없는 하나님,' 그리고 '그의 백성과 함께 성장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그 움직임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리십니다. 계명은 하나님을 배타적 유일신을 주장하지 않으며 활동의 방향성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말합니다.
이 맥락에서 계명은 하나님과 백성의 호흡이 조화를 이루어 연결되는 길에 하나님의 구원활동이 세상에 창조한 공동체에 관한 하나님의 꿈/설계 (Design)를 반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기론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하였습니다. 보편적이고 간략한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리(理)는 사물과 질서의 원리를, 기(氣)는 그 원리가 역동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마음과 방향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이 호흡에 참여할 때 생기와 호흡이 제공된다는 약속이 주어지고 있는 언약입니다.
너희가 이 꿈에 참여하여 이 설계를 추구하면, 거기에 나도 함께 있을 것이고 나는 그렇게 되도록 움직일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내가 누구인지 세상에 알릴 것이고 그렇게 참여하는 너희가 나의 백성이다.
구원활동의 성격: 내려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활동은 종살이 하던 백성들을 해방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습관, 욕망, 왜곡된 관점, 그리고 어떤 사회적 압력들이 우리를 붙잡아 둘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 자신이 아님을 경험합니다. 첫 계명은 하나님의 숨결에 참여하여 그 모든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여정을 시작하라는 초대입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의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습관을 전환할 기회를 얻으며, 삶의 태도를 다르게 선택할 힘을 얻습니다. 우리의 몸은 자유 안에서 이 호흡에 몸을 익숙하게 하는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 첫 계명은 하나님의 호흡의 지배 안으로 참여할 때 다른 모든 지배에서 해방된다는 역설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동양의 이해로 접근하면 어떤 언어로도 제한할 수 없는 무(無)로 말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이해에서 ‘무’는 없음/공허 보다는, 모든 규정 이전의 충만으로 하나님을 정의하거나 제한할 수 없음 말합니다. 이 관점에서 첫 계명은 이 무(無)의 하나님 안으로 참여해 들어가라는 부름 이며, 그 하나님 (하나됨) 안에서 제한될 때 우리가 자유를 경험한다는 역설을 설명합니다. 이는 헬라 철학의 이해로서 “신의 성품에 참여”(벧후 1:4)와 공명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됨 안으로, 하나님의 호흡과 연결될 때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 세상에서 자신을 확장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우리가 약할 때, 깨져 있을 때, 소외되었을 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호흡에 참여하는 삶은 소외된 이웃 곁으로 흐르는 삶입니다. 자비와 정의의 실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배우고, 그분의 통치 질서를 현재화 합니다. 동시에, 일상의 습관 · 건강 · 자연과의 관계, 경제적 선택까지—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가치가 스며들도록 구체적 전환을 시도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호흡을 하나됨으로 모아 가는 길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내게 내려오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첫 계명은 결코 이스라엘의 야웨로 민족, 신, 종교로 제한하라는 배타의 계명이 아닙니다. 성서는 하나님을 배타적 유일신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구원 행동을 펼치시는 분으로 그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과 언약 관계를 세우는 분으로 서술합니다. “하나님의 내려오심” 을 해방으로 경험한 백성들에게 다른 지배와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여, 하나님의 하나됨을 향한 가치와 호흡과 함께 흐르도록 하는 초청이며 약속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이며 대체불가능한 하나님의 이야기로 세상에 하나님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됨의 길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게 내려오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 - 또 낮은 자리로 함께 내려가는 여정 - 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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